AI와 신앙

에이전트에도 인격의 언어를 쓴다

"나는 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인수를 마친 AI 코딩 스타트업 커서(Cursor) 직원 1000여명 앞에서, 그록이 앤트로픽에 뒤처져 있다고 짚은 직후에 한 말입니다.1 두 문장을 붙여 놓으면 모델의 성능 격차가 곧 승부의 언어로 옮겨갑니다. 이기고 지는 말은 원래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팀 사이에서 쓰던 말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그 자리에 모델이 들어와 있습니다.

평가라는 낱말의 이동

같은 시기 구글은 ADK(Agent Development Kit)에 실시간 평가 기능을 추가했다고 개발자 블로그에서 밝혔습니다.2 음성 에이전트를 데모 단계에서 실제 서비스로 옮기려면, 대화가 매번 달라지는 문제를 감당할 자동화된 검증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개발자는 자연어로 평가 기준(rubric)을 적어두고, 시뮬레이션 사용자와 실제 음성을 주고받게 한 뒤 그 결과를 점수로 매깁니다.

이 채점에서 점수를 매기는 쪽도 사람이 아니라 모델입니다. 대화 상대로 나서는 시뮬레이션 사용자도 실제 음성으로 말하는 모델이고, 그 말에 루브릭을 대는 쪽도 모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려고 만든 기준표를, 이제 모델이 모델에게 적용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눈에 걸리는 낱말은 '루브릭'입니다. 루브릭은 원래 학생의 글이나 발표를 채점할 때 쓰는 기준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때, 그 평가가 자의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도구입니다. 이 낱말이 이제 에이전트의 대화 능력을 채점하는 데 그대로 쓰입니다.

낱말 하나가 옮겨간 것뿐이라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낱말은 그 낱말이 원래 서 있던 자리의 기억을 함께 옮겨옵니다. 루브릭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개발자는 자기도 모르게 에이전트를 학생처럼, 평가받는 존재처럼 다루게 됩니다.

허가와 승패 사이

클로드 코드는 지난 25일 v2.1.246 릴리스에서 자동 모드(Auto mode) 탭을 /permissions 메뉴에 추가했습니다.3 이 탭은 에이전트가 사용자 확인 없이 실행해도 되는 작업과, 반드시 사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작업을 가르는 분류 규칙을 보여주고 고칠 수 있게 합니다. 같은 릴리스에는 와일드카드가 하위 명령어 앞에 붙는 허용 규칙에 새로 경고가 붙었습니다. Bash(git * main)처럼 적어두면 의도치 않게 다른 옵션까지 함께 허용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개발자가 이 화면을 열어 팀이 써온 규칙을 하나씩 훑어본다고 해봅시다. git 명령어 앞에 별표를 걸어둔 규칙에서 경고를 발견하고, 규칙을 좁혀 다시 저장합니다. 다음 커밋 작업에서 에이전트가 그 규칙에 걸려 멈추는지, 조용히 지나가는지 지켜봅니다.

'허용'과 '거부', '승인'이라는 말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외출을 허락하고, 상사가 부하 직원의 지출을 승인합니다. 그 관계에는 허락하는 쪽과 허락받는 쪽 사이의 위계와 신뢰가 함께 있습니다.

에이전트 권한 규칙에도 같은 말이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다른 점은, 여기서는 허락을 구하는 쪽도 코드고 허락 여부를 미리 정해둔 규칙도 코드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그 규칙을 짜는 일뿐입니다. 그런데도 화면에는 '허용됨', '거부됨'이라는, 사람 사이에서만 쓰던 말이 그대로 뜹니다. 머스크의 '진다'는 말과 이 '허용됨'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나왔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던 낱말을 사람과 도구 사이에 그대로 얹어 쓴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언어가 AI 시스템에 옮겨가 평가, 허가, 승패의 세 갈래로 나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평가는 모델 대화를 루브릭으로 채점하고, 허가는 규칙이 실행을 승인하거나 막으며, 승패는 성능 경쟁을 이기고 지는 말로 부르는 방식입니다.
관계의 말이 AI 시스템에서 평가·허가·승패의 언어로 바뀌는 과정을 정리했습니다.원본 크게 보기 ↗

빌려 쓴 말이라는 방어

이런 낱말 이동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개발자들이 루브릭이니 승인이니 하는 말을 쓰는 이유는 복잡한 시스템을 짧은 말로 다루기 위해서일 뿐, 에이전트에 인격을 부여하려는 뜻은 아니라는 반응입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업계에는 원래 이런 빌려 쓰기가 흔합니다. '킬' 프로세스, '부모' 프로세스와 '자식' 프로세스, '데드락'까지 사람의 삶과 죽음, 가족 관계에서 빌려온 말이 이미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습니다.

이 반론은 일부 맞습니다.

루브릭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구글이 에이전트를 학생으로 여긴다고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진다'는 말을 썼다고 머스크가 그록을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도 아닙니다. 말은 편의를 위해 빌려 쓸 수 있고, 빌린 말이 반드시 그 말의 원래 무게를 다 짊어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낱말들이 완전히 중립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드락이라는 말은 프로세스가 서로 멈춰 있다는 상태만 가리키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면 '진다', '허용한다', '평가한다'는 말은 상태를 가리키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의 태도, 상대를 대하는 방식까지 함께 끌고 옵니다. 자녀에게 외출을 허락하는 부모의 마음과, 코드 실행을 허용하는 개발자의 마음이 완전히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지는 않겠지만, 완전히 무관한 자리에서 출발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겹침이 남기고 간 것

신앙은 오래전부터 인격을 두고 말할 때 특정한 낱말을 써왔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다, 관계 안에 있다, 책임을 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단순히 기능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인격으로 대한다는 전제를 이미 담고 있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평가한다'거나 '허용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글의 루브릭, 클로드 코드의 허용 규칙, 머스크의 승부 언어는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나온 말입니다. 하나는 품질 관리를 위한 채점표고, 하나는 시스템 안전을 위한 규칙이고, 하나는 경쟁사를 향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세 낱말 다 원래 사람 사이에서만 쓰던 말을 데려다 씁니다.

이 이동이 에이전트를 인격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낱말 하나가 존재의 지위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낱말을 쓰는 사람의 습관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평가하고 허락하고 승부를 가리는 말을 매일 에이전트에 쓰다 보면,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도 자기도 모르게 옮겨갑니다. 개발자의 화면과 신자의 기도 사이에 놓인 거리는 여전히 멉니다. 그런데도 그 사이를 잇는 낱말들은 조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주

  1. 머스크 "그록, 앤트로픽에 뒤처져"...커서에 코딩 격차 극복 당부www.aitimes.com, 2026-08-25 발행, 2026-08-26 접속 확인.

  2. How to Evaluate Live & Voice Agents in ADK — developers.googleblog.com, 2026-08-26 발행, 2026-08-26 접속 확인.

  3. v2.1.246 — github.com, 2026-08-25 발행, 2026-08-26 접속 확인.

신학자이자 AI 교육전문가 이진민

글쓴이 · 이진민

기술의 가능성과 사람의 책임.

조직신학자 · AI 활용 교육전문가

조직신학과 오순절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교회·학교·공공기관에서 생성형 AI 교육과 컨설팅 활동을 합니다. 신학자로서 기술을 읽고, 교육자로서 그것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판단 기준을 고민하고 제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직신학 · 오순절 신학AI 리터러시 · 연구와 수업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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