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82%가 자신도 모르는 그림자 AI 에이전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숫자가 있습니다. 클라우드시큐리티얼라이언스 통계를 무대에 올린 사람은 에임인텔리전스라는 AI 보안 기업의 최고 기술책임자 박하언입니다.1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AI 리스크 컨퍼런스 발표에서 그는 이 숫자로 지속적·실시간 보안 레이어의 필요를 설득했습니다. 통제 장치를 파는 사람이 통제 공백을 경고하는 이 구도를 저는 그냥 넘기지 못합니다.
숫자와 매출의 거리
보안 기업이 위험을 부풀린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82%라는 수치 자체는 근거 있는 조사 결과이고, 기업들이 파악 못한 AI 에이전트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숫자를 누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팔기 위해 꺼냈는지는 별개 질문입니다.1 같은 발표에서 절반 이상 기업이 자사 AI 에이전트가 실제로 권한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통계도 함께 인용됐습니다.1
경고와 상품이 같은 문장 안에 있을 때는 경고의 강도와 상품의 필요가 함께 커집니다. 보안업체 입장에서 그림자 에이전트는 위협인 동시에 매출입니다. 이 이중성을 인정하고 나면, 통제 공백을 알리는 목소리의 절박함을 그대로 위험의 크기로 읽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법이 뒤처지는 속도
이튿날 지디넷코리아에 실린 칼럼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정서를 건드립니다. 법학자 최경진은 기술이 지수함수로 커지는 동안 법은 과거에서 규칙을 길어 올리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짚습니다.2 그는 사회가 함께 대처할 안전망으로 법과 제도를 지목합니다.
이 진단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법이 신중한 이유도, 신중함이 낳는 지체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 지체를 메우자는 요청이 향하는 곳입니다. 새 규칙, 새 인가, 새 심의 절차는 대개 법률가와 규제기관의 권한 범위를 함께 넓힙니다.
규제를 늘리자는 목소리가 전부 사욕에서 나온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규제 확대 요청은 규제기관과 법률 직역의 권한을 함께 넓히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거버넌스라는 상품
구글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구글 개발자 블로그는 지난 4일,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의 개발자 경험 프로그램이 진행한 스프린트를 소개하며 엔터프라이즈 AI 거버넌스 최적화를 핵심 성과로 꼽았습니다.3 설정 전제 조건을 다듬고, 확장 구성의 보안을 강화하고, 정책 집행 방식을 명확히 했다는 내용입니다.
내부 지름길에 기대지 않고 실제 개발자 워크플로를 반복 점검했다는 설명은 성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성실함이 향하는 곳도 결국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라는 제품입니다. 거버넌스가 잘 갖춰진 플랫폼이라는 인상은 그 자체로 판매 요소입니다.
보안업체는 공포를 팔고 플랫폼은 안심을 팝니다. 방향은 반대지만 구조는 같아서, 통제라는 말이 나오는 자리마다 누군가의 매출표도 함께 있습니다.
공동체의 오래된 방식
신앙공동체로 눈을 돌리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AI 에이전트를 쓰는 자리는 아직 대부분 일정 관리, 자료 정리, 초안 작성 수준입니다. 이 정도 자율성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감독 기구를 세우기보다, 이미 있는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당회나 목회자 협의체는 오래전부터 재정 집행과 상담 기록, 인사와 관련한 상호책임 구조를 운영해 왔습니다. AI 에이전트가 만든 문서나 응답도 결국 사람이 검토하고 서명하는 절차 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 별도의 AI 감독기구를 얹는다고 해서 신뢰의 질이 더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인격적 신뢰라는 말은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에이전트가 대신 쓴 문장이라 해도, 그 문장에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여전히 그 문장을 보낸 사람입니다. 이 책임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 한, 기존 구조로 충분합니다.
전제가 무너지는 지점
저는 지금 단계에서는 별도의 AI 감독기구를 서둘러 세우기보다 기존 목회적 신뢰와 상호책임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합니다. 이번에 살펴본 세 사례에서는 경고를 내놓은 쪽이 모두 그 통제 장치를 팔거나 규제 권한을 넓히려는 쪽이었다는 점이 그 판단의 근거입니다.
다만 이 판단은 한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지금처럼 초안을 쓰고 일정을 조율하는 수준에 머무는 동안에만 성립하는 판단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에이전트가 사람의 승인 없이 재정을 집행하거나 상담 응답을 최종 발송하는 수준까지 넘어간다면, 같은 자료를 보고도 저는 다른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그 경계선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는 저 혼자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서 에이전트에게 이미 맡긴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이 사람의 최종 확인 없이 완결되는지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자료를 보고 다른 자리에 선 이들과 그 경계를 함께 따져 보려 합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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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인텔리전스 "AGI급 '아스트라'도 보안 공백 여전...다음은 로봇·자율주행" — www.aitimes.com, 2026-09-07 발행, 2026-09-08 접속 확인.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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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의 未來法道 기술 대혁신 시대, 법은 무엇을 '패치'해야 하나 — zdnet.co.kr, 2026-09-08 발행, 2026-09-08 접속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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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ing Developer Excellence: Inside the Program Sprints — developers.googleblog.com, 2026-09-04 발행, 2026-09-08 접속 확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