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인문학

AI 기본법, 확인의 사각지대

AI 기본법 제32조가 '최첨단 AI'를 가르는 기준은 누적 연산량 10의 26승 플롭이다.

숫자 하나로 규제 대상 여부가 갈린다.

그런데 이 숫자가 비켜 가는 자리가 있다. 최대선 숭실대 AI안전성연구센터장은 1일 국가AI전략위원회 세미나에서, 정부가 주도해 개발 중인 사이버보안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바로 그 자리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1 고영향 AI로 분류되는 영역에 사이버보안이 들어 있지 않고, 연산량 기준도 이 모델을 잡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고영향의 바깥

법이 작동하는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기준을 숫자로 못박아 두면 누구든 그 숫자를 재서 규제 대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투명함이 법적 검증의 힘이다.

그런데 최대선 센터장이 짚은 지점은 숫자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범위 자체가 좁다는 지적이다.1 사이버보안 특화 모델은 연산량으로 보면 최첨단 AI 기준에 못 미칠 수 있고, 분류로 보면 고영향 AI 목록에 사이버보안이 아예 들어 있지 않다. 법으로 확인하려 해도 확인할 조항이 없는 셈이다.

여기에는 이해관계도 하나 겹쳐 있다. 이 모델을 주도해 개발하는 쪽이 정부고, 그 정부가 동시에 AI 기본법의 규제 설계자다. 규제를 만드는 손과 규제를 받아야 할 대상을 만드는 손이 같은 자리에 있을 때, 법적 확인은 더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법이 미리 포괄해 둔 대상뿐이고, 포괄 밖의 대상은 기준이 아무리 명확해도 확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와이파이가 보내는 곳

Consumer Reports가 커넥티드 차량 21대와 연동 모바일 앱 30개를 직접 조사한 결과는, 법적 공시 없이도 확인 가능한 사실이 있음을 보여준다.2 차량 19대가 와이파이로 제3자 서버에 접속했고, 그 접속 대상에는 광고와 추적 도메인이 섞여 있었다. 앱 7개는 민감한 식별정보를 광고·추적 업체로 보냈고, 그 가운데 5개는 차대번호까지 함께 전송했다.

연구자가 차량 한 대의 와이파이 트래픽을 직접 캡처하고, 그 패킷이 어느 도메인으로 향하는지 하나씩 따라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 조사가 확인하는 방식이 또렷해진다. 제조사가 무엇을 공개했는지와 무관하게, 실제로 어디로 데이터가 가는지를 측정한다. 법이 공시를 요구하지 않아도 측정은 요구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조사는 법과는 다른 쪽에서 확인의 공백을 메운다.

다만 이 측정에도 적용 한계는 있다. 조사 대상은 21대와 30개 앱으로 한정돼 있고, 조사 시점의 소프트웨어 설정이 바뀌면 같은 차량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2 독립 조사가 확인하는 것은 조사한 순간의 사실이지, 영구히 고정된 사실은 아니다.

뒤를 보는 쪽

클로드 코드 v2.1.287 릴리스 노트에 추가된 기능 가운데 '유 슈드 노우'라는 이름이 눈에 걸린다.3 사이드 에이전트가 사용자나 클로드 자신이 놓칠 수 있는 지점을 대신 지켜보고 표시해 주는 기능이다. 플러그인을 켜면 작동한다.

이 기능이 흥미로운 이유는 감시의 주체가 외부 기관이나 법이 아니라 도구 내부라는 점이다. 사용자가 무언가를 확인하려 할 때, 그 확인을 또 다른 에이전트가 대신 떠안는다. 확인 책임이 사람 쪽에서 도구 쪽으로 한 칸 건너가는 구도다.

그런데 이 감시 장치도 조건 없이 작동하지는 않는다. 릴리스 노트는 이 기능이 텔레메트리를 켠 퍼스트파티 세션에서만 작동한다고 밝힌다.3 달리 볼 여지가 여기서 생긴다. 텔레메트리를 꺼둔 세션이나 서드파티 환경에는 이 '뒤를 보는 눈'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텔레메트리가 켜져야만 작동한다는 조건은, 이 장치가 사용자를 돕는 동시에 운영사 쪽으로 데이터가 흘러가는 통로와도 겹쳐 있음을 짚게 한다.

세 확인이 남긴 자리

이번 주 나온 세 소식을 나란히 읽으면 확인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법은 숫자와 분류로 선을 긋고, 그 선 안쪽만 확인한다. 독립 조사는 선언된 사실이 아니라 측정된 사실을 확인하고, 측정한 순간과 대상 안에서만 유효하다. 도구는 내부에 감시 장치를 심어 확인하고, 그 장치가 켜진 세션 안에서만 작동한다.

세 방식은 서로 겹치지 않는 영역을 맡는다. 법이 못 보는 사이버보안 모델을 독립 조사나 내부 감시 장치가 대신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독립 조사가 밝힌 차량 데이터 흐름을 법이 사후에 규제로 흡수할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도구 안의 감시 장치가 지켜보는 범위는 애초에 그 세션 밖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

이번 주 바뀐 것은 확인의 방식이 하나 늘었다는 사실이다. 법적 기준, 독립 실측, 내부 감시 장치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마다 비어 있는 구간도 함께 드러났다.

각주

  1. 최대선 센터장 "사이버보안 특화 모델 AI 기본법 사각지대...기준 마련 시급" — www.aitimes.com, 2026-10-02 발행, 2026-10-02 접속 확인. ↩ ↩2

  2. Automatic Transmission - 커넥티드 차량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연구 — news.hada.io, 2026-10-01 발행, 2026-10-02 접속 확인. ↩ ↩2

  3. v2.1.287 — github.com, 2026-10-01 발행, 2026-10-02 접속 확인. ↩ ↩2

신학자이자 AI 교육전문가 이진민

글쓴이 · 이진민

기술의 가능성과 사람의 책임.

조직신학자 · AI 활용 교육전문가

조직신학과 오순절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교회·학교·공공기관에서 생성형 AI 교육과 컨설팅 활동을 합니다. 신학자로서 기술을 읽고, 교육자로서 그것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판단 기준을 고민하고 제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직신학 · 오순절 신학AI 리터러시 · 연구와 수업 설계
저자 소개 전체 보기

다음으로 읽을 글

생각의 확장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AI 활용 교육 · 2026. 10. 1

MCP 자동 변환, 경계는 사람이 그린다

구글 클라우드 API 게이트웨이의 REST-MCP 자동 변환 발표와 클로드 코드가 쌓인 권한 요청에 순서를 매긴 갱신을 나란히 놓고, 자동화가 대신하지 못하는 경계 설계의 몫을 짚는다.

다음 글 읽기

주제별 추천

당신에게 매력적인 주제를 골라보세요.

분별의 인문학, AI와 신앙, AI 활용 교육을 각각의 관점과 실천으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강의와 컨설팅

조직의 상황에 맞는 AI 활용 기준을 함께 설계합니다.

단순한 도구 소개만 하지 않습니다. 실제 업무, 연구, 수업, 목회 환경에 맞춰 교육 내용과 적용 과정을 구성합니다.

  • 교육기관·공공기관을 위한 AI 리터러시와 업무 적용
  • 연구논문·수업을 위한 생성형 AI 활용 접근법 설계
  • 교회와 목회 현장을 위한 책임 있는 AI 컨설팅

문의에 포함하면 좋은 내용

  1. 기관과 참여 대상
  2. 희망 주제와 기대 결과
  3. 일정·시간·진행 방식
카카오톡으로 강의 문의

제안서·공문·첨부파일은 alive@dia-io.com로 보내주세요.

DiA AI Edu. Solution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