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인문학

새 스마트폰의 'AI 기능' 목록을 보면서,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묻는다

새 스마트폰의 'AI 기능' 목록을 보면서,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묻는다

발표장의 목록,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

새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발표 자료에는 긴 기능 목록이 따라붙어요. 통역, 요약, 사진 보정, 일정 정리 같은 항목들이 'AI'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열되죠. 목록은 화려해요. 게다가 이런 목록은 해가 갈수록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항목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만큼 실제 사용 경험이 두터워졌다고 보기는 어렵죠. 오히려 이미 있던 기능이 이름만 바꿔 다시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요. 하지만 그 화려함이 답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이 기능이 없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사용자의 하루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질문이죠. 발표 슬라이드는 '무엇을 새로 할 수 있게 됐는가'는 강조하지만, '무엇을 사용자 대신 하게 됐는가'는 잘 말하지 않아요.

이름을 얻는 순간 생기는 착시

인문학에서 오래 다뤄온 문제 중 하나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대상을 실제로 바꾼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는 점이에요. 이전부터 있던 기능에 새 이름을 붙이면, 그 기능이 마치 이번에 새로 생긴 것처럼 읽히게 되죠. 학술 논문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착시가 있어요. 예컨대 arXiv에 등록된 프리프린트들은 그 자체로 동료심사를 통과했다는 뜻이 아니지만, 등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검증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죠. 가령 최근 구글이 자사 블로그에서 갤럭시 언팩 2026과 관련해 세 가지 업데이트 소식을 전한 사례를 보면, 이런 발표 형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장르로 굳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발표된 개별 기능의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목록이 '이름 붙이기'의 결과인지 아니면 실제 사용 방식의 변화인지예요.

"가능하게" 말고 "결정하게"를 물어야 하는 이유

기능 목록을 읽을 때 흔히 던지는 질문은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예요.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기능이 무엇을 나 대신 결정하는가"죠. 사진 보정 기능이 밝기를 자동으로 맞춰준다면, 그건 사용자의 선택지를 넓힌 걸까요, 아니면 하나의 선택을 조용히 대신 내려버린 걸까요. 이 구분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가 결과에 대해 얼마나 통제권을 갖는지를 가르는 경계선이에요. 가능하게 한다는 서술은 대개 선택지를 늘렸다는 인상을 주지만, 많은 경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의 판단을 기계 쪽으로 옮기는 일이에요. 예를 들어 메시지 앱이 답장 문구를 미리 제안해주는 기능을 생각해보면, 이 기능은 분명 타이핑 시간을 줄여주지만 동시에 어떤 말투와 내용으로 답할지를 미리 골라주는 셈이에요. 사용자가 그 제안을 그대로 누르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실제로 응답을 구성하는 주체는 조금씩 옮겨가고 있는 거죠.

반론: 이름이 만들어내는 언어도 힘이 된다

물론 반론도 가능해요. 이름 붙이기가 전부 공허한 수사는 아니라는 반론이죠. 어떤 기능이 이름을 얻으면, 사용자는 비로소 그것을 요구하고 비교하고 문제 삼을 언어를 갖게 돼요. 이름이 없던 시절에는 불편함을 막연하게 느꼈다면, 이름이 생긴 뒤에는 "이 기능이 왜 이렇게 작동하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 이름 붙이기 자체를 무조건 마케팅적 재포장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요. 다만 이름이 언어를 만들어준다는 사실과, 그 이름이 실제 변화를 증명한다는 사실은 별개예요.

목록 앞에서 다시 물어야 할 것

발표 목록을 접했을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은 두 가지 질문을 나란히 던지는 거예요. 하나는 이 기능이 새로 가능하게 한 일이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기능이 대신 결정하게 된 일이 무엇인가예요. 두 질문에 대한 답이 겹치지 않는다면, 그 항목은 이름 붙이기에 가깝다고 봐도 좋아요. 답이 분명히 갈리는 목록일수록, 그 발표는 마케팅적 재포장이 아니라 실제 변화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이 습관에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 없어요. 발표 자료를 덮고 나서 스스로에게 그 두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 충분하죠. 판단은 결국 목록의 길이가 아니라 이 두 질문에 달려 있어요.

참고 자료

본문 집필에 참고한 공개 자료입니다. 접속 확인일: 2026-07-26.

신학자이자 AI 교육전문가 이진민

글쓴이 · 이진민

기술의 가능성과 사람의 책임.

조직신학자 · AI 활용 교육전문가

조직신학과 오순절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교회·학교·공공기관에서 생성형 AI 교육과 컨설팅 활동을 합니다. 신학자로서 기술을 읽고, 교육자로서 그것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판단 기준을 고민하고 제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직신학 · 오순절 신학AI 리터러시 · 연구와 수업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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