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내일 강단에서 전할 원고를 앞에 두고 문득 기억이 스칩니다. 이 본문, 삼 년 전 새벽기도회에서 다뤘습니다. 그때 마음에 남는 관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모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한글 파일이었는지 수첩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백지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자료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주석 요약도, 적어 둔 예화도 어딘가에는 있습니다. 문제는 흐름입니다. 본문에서 본 것이 신학적 명제로 여물고, 명제가 예화를 만나 원고가 되는 그 길이 기록에 남지 않으니, 매주 같은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걷게 됩니다. 설교 준비에서 관리해야 할 것은 자료의 양보다 이 흐름입니다.
이 글은 그 흐름을 Obsidian(옵시디언)이라는 노트 프로그램 위에 세우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새로 배워야 할 것은 사실상 링크 하나뿐이니, 컴퓨터가 낯선 분도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Obsidian을 고르는 이유
Obsidian은 노트를 내 컴퓨터의 폴더에 저장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노트는 마크다운(Markdown), 곧 어느 편집기로나 열리는 평문 텍스트 파일로 남습니다. 서비스가 바뀌거나 사라져도 파일은 내 폴더에 그대로 있으니, 십 년을 내다보고 쌓아야 하는 설교 기록에 어울리는 저장 방식입니다. 노트 도구는 여럿 있지만 이 글이 Obsidian을 고른 이유는, 링크와 백링크가 부가 기능이 아니라 도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쓸 핵심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부 링크(internal link)입니다. 노트를 쓰다가 다른 노트의 이름을 대괄호 두 겹으로 감싸면 — 예컨대 [[눅15 관찰]] — 두 노트가 연결되고, 누르면 바로 그 노트로 이동합니다. 다른 하나는 백링크(backlink)입니다. 지금 보는 노트를 가리키는 링크가 어느 노트에 들어 있는지 거꾸로 보여 주는 목록으로, 화면 옆의 백링크 패널에서 확인합니다. 링크가 여기서 저기로 가는 길이라면, 백링크는 저기서 여기로 온 발자국인 셈입니다. 아래 워크플로우는 이 두 기능만으로 움직입니다.
네 종류면 충분한 노트
설교 준비의 산출물을 네 종류의 노트로 나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본문 관찰 노트는 성경 본문을 읽으며 내가 직접 본 것을 적는 자리입니다. 주석 요약보다 나의 관찰이 먼저입니다. 예컨대 누가복음 15장을 읽다가 '아버지가 아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 먼저 알아보고 달려간다'라고 적는 식입니다. 본문 단락마다 노트를 하나 만들고, 이름은 '눅15 관찰'처럼 본문이 드러나게 붙입니다.
신학 명제 노트는 관찰에서 길어 올린 한 문장을 담습니다. 명제 하나에 노트 하나 — 이것이 전체 구조의 마디가 됩니다. '아버지의 환대가 아들의 준비된 고백보다 앞선다' 같은 문장을 제목으로 삼고, 노트 본문에는 이 명제의 근거가 된 [[눅15 관찰]]을 링크해 둡니다.
예화 노트도 예화 하나에 노트 하나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겪은 일이나 책에서 만난 장면을 적고, 그 예화가 비추는 명제 노트를 링크해 둡니다.
원고 노트는 실제 설교문입니다. 원고를 쓰면서 그 주에 세운 명제 노트와 고른 예화 노트를 본문 안에 링크합니다. 이름에는 '2026-08-30 눅15 주일설교'처럼 날짜와 본문을 함께 적어 두면 나중에 찾기 쉽습니다.
폴더보다 링크가 중요합니다. 폴더는 노트에게 자리를 하나만 내주지만, 링크는 하나의 예화가 여러 명제와, 하나의 관찰이 여러 원고와 이어지게 해 줍니다. 폴더 네 개는 보관용 서랍 정도로 생각하시고, 실제 연결은 링크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습관이 이 모든 것을 떠받칩니다. 노트 이름을 일관되게 짓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눅15 관찰'로 불렀다가 '누가복음 15장 메모'로 불렀다가 하면 링크가 서로 다른 노트를 가리키게 됩니다. 처음에 정한 이름 규칙을 계속 쓰십시오.
관찰에서 원고까지, 흐름 잇기
연결 순서는 준비의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릅니다. 주초에는 본문을 읽으며 관찰 노트를 채웁니다. 관찰이 몇 개 쌓이면 그 가운데 이번 설교가 붙들 한 문장을 골라 명제 노트를 만들고, 근거가 된 관찰 노트를 링크합니다. 명제가 서면 예화 폴더를 열어 이 명제를 비출 예화를 찾습니다. 마땅한 것이 없으면 이번 주에 만난 장면 하나를 새 예화 노트로 적으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원고 노트를 열고, 명제와 예화를 링크하며 원고를 씁니다.
모든 관찰이 명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설교에 쓰이지 않은 관찰은 관찰 노트에 그대로 남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 본문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재고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원고 노트 하나만 열어도, 이 설교가 어떤 관찰에서 출발해 어떤 문장으로 여물었는지 링크를 따라 되짚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마친 뒤에도 생각의 경로가 통째로 남습니다. 다음 준비는 바로 이 경로 위에서 시작됩니다.
백링크가 일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 구조의 열매는 시간이 지나면서 열립니다. 같은 본문을 다시 설교하게 되었다고 해 봅시다. '눅15 관찰' 노트를 열면 백링크 패널에 지난번의 명제 노트와 원고 노트가 나타납니다. 그때의 내가 이 본문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문장을 세웠는지, 폴더를 뒤질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확인합니다.
예화 노트의 백링크는 다른 걱정을 덜어 줍니다. 예화 노트를 열고 백링크를 보면 이 예화가 어느 원고에 링크되었는지, 곧 어느 설교에서 이미 썼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이 예화, 이 교회에서 벌써 하지 않았던가' 하며 기억에 기대던 확인을 기록이 대신해 줍니다.
몇 달 치 노트가 쌓인 뒤에는 그래프 뷰(graph view), 곧 노트 사이의 링크를 점과 선의 지도로 보여 주는 화면도 열어 보십시오. 링크가 많이 모여든 명제 노트가 눈에 띌 텐데, 그것이 내가 강단에서 자주 돌아가는 주제입니다. 내 설교의 지형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됩니다.
템플릿과 태그로 반복 줄이기
틀이 잡히면 반복 작업을 줄일 차례입니다. Obsidian의 템플릿(template) 기능을 쓰면 노트의 뼈대를 미리 저장해 두고 새 노트를 만들 때 불러올 수 있습니다. 관찰 노트에는 '본문 / 관찰 / 떠오른 질문' 같은 틀을, 원고 노트에는 '본문 / 명제 / 개요 / 원고' 같은 틀을 만들어 두면 매주 형식을 다시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태그(tag)는 노트 이름과 별개로 붙이는 분류 표지입니다. #대강절, #장례처럼 절기나 상황을 달아 두면 링크와는 다른 축으로 노트를 다시 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태그를 많이 만들면 분류 자체가 일이 되니, 서너 개로 시작해 필요할 때 늘리기를 권합니다.
AI는 구조가 선 다음입니다
이 워크플로우에 AI를 어떻게 붙일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원칙은 순서에 있습니다. 구조가 먼저 서고, AI는 그 위에 얹습니다. 노트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요약과 초안을 AI에게 맡기면, 산출물이 채팅창과 파일 여기저기에 흩어져 혼란이 오히려 빨리 쌓입니다. 반대로 네 종류의 노트 구조가 서 있으면, AI에게 받은 반론이나 배경 정리도 노트 하나로 들어와 해당 명제에 링크됩니다. 그 노트에 어느 도구에서 받은 내용인지 출처를 함께 적어 두면, 내 관찰과 기계의 제안이 뒤섞이지 않습니다.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맡기지 않을지는 "목회자를 위한, AI를 분별하며 쓰는 법"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이 글에서 기억하실 것은 순서 하나입니다. 링크 구조를 먼저 세우십시오. 도구는 그다음입니다.
오늘 30분 실습
- obsidian.md에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새 볼트(vault·노트가 저장될 폴더)를 '설교'라는 이름으로 만듭니다.
- 볼트 안에 폴더 네 개를 만듭니다 — 관찰, 명제, 예화, 원고.
- 이번 주 설교 본문의 관찰 노트를 만들고, 주석을 열기 전에 본문만 읽으며 관찰을 세 가지 적습니다.
- 관찰 하나에서 한 문장 명제를 뽑아 명제 노트를 만들고, 그 안에 [[관찰 노트 이름]]을 입력해 첫 링크를 만듭니다.
- 기억나는 예화 하나를 예화 노트로 적어 명제 노트에 링크합니다. 다음 주에도 같은 순서를 반복합니다.
설교 준비는 매주 돌아오지만, 돌아온다고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생각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록에 남아 있어야 반복이 축적으로 바뀝니다. 링크는 그 길을 놓는 단순한 도구입니다. 물론 어떤 노트 구조도 본문 앞에 앉아 묵상하는 시간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잘 세운 구조는 메모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줄여서, 본문 앞에 머무는 시간을 지켜 줍니다.

